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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봄을 위한 길러냄의 시간 - Chim↑Pom: Happy Spring

 

 

일본의 아티스트 콜렉티브 침폼(Chim↑Pom)의 대규모 회고전이 2월 18일부터 5월 29일까지 도쿄의 모리미술관(Mori Art Museum)에서 열리고 있다. 침폼은 2005년 결성(멤버는 에리, 우시로 류타, 하야시 야스타카, 미즈노 토시노리, 오카다 마사타카, 이나오카 모토무 총 6명으로 구성) 이후, 선보이는 프로젝트마다 화제를 불러모으는 기발한 상상력과 이를 실현해내는 행동력으로 이목을 끌어왔다. 2015년 런던의 사치 갤러리에서의 개인전을 비롯하여 세계적인 미술관, 비엔날레의 러브콜을 받는 등, 2000년대 중반 이후 일본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히기에 부족함이 없다. 국내에서는 2016년 부산비엔날레와 2018년 강원국제비엔날레에서 대규모 설치작업을 선보인 바 있다. 침폼의 지난 17년 간의 작품활동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침폼은 일본 현대미술계에서도 이단아로 불려왔는데 멤버의 대부분이 미대출신이 아닌 점이나, 사회 정서상 터부시되는 주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이다 마코토, 무라카미 타카시와 같은 화제 몰이와 자기 어필에 능한 선배 작가들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개인에 몰두하는 90년대 경향과는 오히려 정반대의 활동을 해왔다. 스스로를 ‘집단을 뜻하는 그룹이 아닌 협동의 의미를 강조하는 콜렉티브’라 칭하는 침폼은 미술가들의 집단적인 활동을 찾아보기 힘든 90년대와는 대조적으로 다양한 사회문제를 협업 중심의 작업으로 다뤄왔다. 또한 작품의 분위기로는 다소 폐쇄적인 오타쿠 문화와는 달리, 경쾌하고 개방된 상상력이 활동 전반에 나타난다. 이번 회고전은 침폼의 활동 전반을 10가지 세션으로 구성하여 2000년대 이후 일본사회를 둘러싼 집단적 예술 표현 혹은 문화적 토양 형성의 일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귀중한 전시임에 틀림없다.

 

도시와 거리의 문화 생산자

전시실에 들어서면 건설현장과 같이 쇠파이프가 줄지어 세워져 있는 설치작업과 영상 및 오브제가 전시된 ‘도시와 공공성’ 세션과 마주하게 된다. 침폼이 작품활동을 시작한 2000년대 도쿄는 도시정화, 도시재개발 사업으로 대변되는 시기였다. 확성기와 박제 까마귀를 가지고 까마귀 떼를 불러모으는 퍼포먼스 <블랙 오브 데스>(2007), 길거리에서 쥐를 잡기 위해 분투하는 퍼포먼스 <슈퍼 랫>(2006)은 도시정화 사업의 반대급부로 생겨난 도시 생태계의 변화에 주목한 초기의 대표작이다. 살충제에 대한 내성을 갖고 살아가는 쥐의 모습은 부정적인 요소들을 도려내며 발전을 거듭하는 도시 속에서 끈질기고 영리하게 진화를 거듭해온 침폼 스스로의 자화상과도 같다.

침폼은 도시의 길거리를 주된 활동무대로 삼아왔을 뿐만 아니라, 오래된 건물이나 미술관의 내외부를 잇는 길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국립대만미술관에서 열린 ‘아시아 아트 비엔날레2017’에서 선보인 200미터에 달하는 아스팔트의 <길>(2017)은 미술관과 외부의 도로를 연결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이때 길은 단순히 통행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음식물 섭취, 데모 및 파티 개최 등 미술관의 규칙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침폼이 고용한 운영자와 함께 새롭게 만들어가는 장소였다. 예를 들어 2014년 대만의 국회를 점령한 해바라기 운동의 참여자나 대만의 아티스트 Betty Apple과의 협업을 통해 미술관이라는 공공의 영역을 일종의 자유와 일탈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길>을 비롯한 기존 작품과 더불어 전시실을 상하 이중구조로 설계하여 계단으로 이어진 상층에 실제의 아스팔트 길을 배치했다. ‘프로젝트 스페이스’라 불리는 이 공간에서는 ‘길을 기르다’라는 컨셉을 바탕으로 전시기간 동안 다양한 아티스트의 퍼포먼스, 이벤트, 리허설이 끊임없이 생성된다. 3월에는 MES, 토모토시, 아오키드를 비롯한 신예 아티스트의 퍼포먼스가 침폼의 유튜브 계정으로 생중계되었는데, 행위의 잔해들은 길 위에 남겨져 그후로도 계속 전시되었다. 이와 같은 길은 아이다 마코토가 침폼을 설명하는 말인 ‘비오톱(biotope)’, 즉 특정한 생물들이 하나의 생활공동체를 이루어 다른 곳과 명확히 구분되는 서식지와 같은 공간이 된다. 여기에는 현대도시에서 타자와 공생할 수 있는 자생적인 공간을 추구하고, 이를 실제로 구현하고 공유해 나가는 침폼의 문화 생산자의 면모가 묻어난다.

 

보는 힘과 전략적 행동

침폼은 궁극적인 공동의 비전을 세워서 활동하기 보다는 그때그때 눈에 들어오는 사회문제에 즉흥적으로 반응하고 이를 예술의 문맥으로 끌어오는 작업을 주로 구사한다. 그들의 표현 활동은 예술의 범주를 넘어 사회와 직접적으로 접촉하면서 종종 세간을 도발하고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히로시마’와 ‘동일본대지진’ 세션은 바로 그러한 침폼의 사회현실을 바라보는 관점과 전략적 행동의 의도를 가늠케 한다.

<히로시마의 하늘을 번쩍하게 만들다>(2009)는 경비행기로 히로시마 원폭 돔 상공에 ‘번쩍’을 뜻하는 글자의 비행운을 만들어 사회적인 물의를 빚었던 작품이다. 언론에서는 이 작품이 원자폭탄의 속칭인 ‘번쩍 꽝’을 연상케 한다는 이유로 비판의 목소리를 올렸고, 당시 리더였던 우시로는 기자회견을 통해 사죄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침폼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평화로운 현대사회에 대한 무관심의 폭로’라는 자신들의 표현 의도를 지역사회나 대중에게 끈기 있게 설명해 나갔다. 이후 히로시마와 관련한 작업은 갈대를 붙인 패널을 불로 그을린 회화 연작 <평화의 날>(2011/2013), 히로시마 시에서 수집한 종이학을 약 7미터 높이로 쌓아 올린 설치작품 <파빌리온>(2013)으로 이어졌다. 다양한 자원봉사자와 관객의 참여를 이끌어낸 이 프로젝트들은 침폼이 단순히 무절제한 소동을 벌이기 보다는 섬세한 균형 감각을 통해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식을 보여준다.

한편 침폼은 수많은 사상자와 물적 피해를 가져온 동일본대지진 직후, 후쿠시마를 찾아가 원전 마크를 그린 깃발을 흔드는 퍼포먼스 <리얼 타임즈>(2011), 현지에서 만난 청년들과 함께 응원의 메시지를 연호하는 <기합 100연발>(2011)을 제작했다. 여기에는 미지의 사태를 발빠르게 전달하고자 하는 르포르타주적 성격과, 전인미답의 장소를 찾아 대상화하고자 하는 개척자의 욕망이 동시에 드러난다. 이는 곧 작가의 진의나 윤리 의식과 결부되는데, 침폼의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적어도 가벼운 화젯거리 찾기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침폼은 동일본대지진 이후 4년이 지난 2015년, 후쿠시마의 방사능오염 수치가 기준치를 초과하는 ‘귀환곤란구역’내에서 <Don’t follow the Wind>(2015-)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12팀의 아티스트가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기획 취지에 공감한 주민들의 건물을 빌려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지만, 방사능의 위험으로 인해 관객은 물론 해당 주민들조차 ‘가 볼 수 없는 전시’이다. 상당한 시간에 흐른 뒤에야 마주할 수 있을 그곳은 조금씩 잊혀지고 있지만 영원히 끝나지 않을 현실을 우리에게 증언해줄 것이다. 이러한 침폼의 안전한 일상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와 지속성을 지닌 응시는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범주를 크게 능가하는 거대한 현실과 끊임없이 마주하는 데에 빼놓을 수 없는 원동력이 된다.

 

행복한 봄, 각자 혹은 함께

이번 전시의 제목 ‘해피 스프링’과 직결되는 세션은 바로 ‘May, 2020, Tokyo’이다. 이곳에서는 침폼이 주로 구사해온 퍼포먼스나 영상보다는 사진인화기법을 사용한 설치작업을 접할 수 있다. <Tokyo 2020>(2020)은 시아노타입 감광액을 바른 천막을 도심의 여러 장소에 일정 기간 설치하여, 긴급사태선언이 내려진 2020년 5월의 눈에 보이지 않는 외부 공기를 인화한 작품이다. 침폼이 내놓은 ‘행복한 봄’이라는 제목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밝은 봄이 오기를 바라면서, 설령 고대하던 봄이 역경 속에 있더라도 상상력을 이어가겠다는 메시지와 직결된다.

제목이 가진 또 하나의 의미는 침폼의 작가 인생과 연관된다. 침폼의 초기작 중에는 멤버 에리가 ‘사랑의 마이아히’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해피 썸머’(2005)라는 영상이 있는데, ‘해피 스프링’은 마치 계절을 돌아 새로운 출발을 예고하는 것 같다. 20대 초반에 의기투합한 침폼은 어느덧 40대 초중반에 접어들었고, 결혼과 동시에 히로시마에 정착하거나(미즈노), 육아로 일상을 보내거나(에리), 대안공간 운영을 시작한(우시로) 멤버도 있다. 그들의 최근 일상은 이번 전시에도 반영되었는데, 가령 안내 데스크에 설치된 ‘크라잉 뮤지엄’이라는 세션을 들 수 있다. 전시기간 중 예약자에 한해 무료로 탁아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프로젝트는 미술관을 찾는 영유아 부모들이 전시를 제대로 관람하지 못한다는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에리가 제안한 것이다.

세계를 누비며 왕성한 활동을 해온 침폼은 현재의 시간을 충실히 이행하고, 가족이나 다음 세대를 품고 돌보는 ‘길러냄(cultivation)’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이러한 성숙 과정은 결코 지금까지 이어온 전위적인 작업 태도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줄곧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온 예술에 대한 방향성과 시행착오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또 하나의 인생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인생 2회차’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들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각자 주위에서 보고 느낀 것, 다양한 이들과의 만남을 고스란히 표현에 반영할 것이며, 이를 공유하는 장을 마련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 2022 by Sanghae 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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